1.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생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883년 영국의 중상류층 청교도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저명한 논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아버지와 시의원 겸 사회개혁가인 어머니 밑에서 온갖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 자랐습니다.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들만 다닐 수 있다는 이튼칼리지를 졸업했습니다. 이튼칼리지에서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보인 케인스의 전공은 수학과 통계학이었고 그 수준도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나 정작 그는 수학을 싫어했으며 철학을 더 관심 있어 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학점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술과 문화를 사랑했으며,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도 주식 투자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1902년에는 본격적으로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킹스칼리지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이때 만난 알프레드 마셜이 그에게 경제학자가 될 것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학내의 재능있고 뛰어난 학생들이 모여 논쟁을 즐기는 비밀클럽인 케임브리지 어포슬스에 속해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졸업 이후에도 평생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클럽 모임에 나갈 정도로 두터운 유대감을 유지했습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공무원이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신뢰감을 깊게 가지고 있었기에 1906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케인스는 스승인 알프레드 마셜이 쓴 '경제원론 1'을 접하고 처음으로 경제학에 흥미를 느껴 열의를 가지고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알프레드 마셜은 케인스를 응원하고 아꼈기에 함께 케임브리지에 남아 경제학 연구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케인스는 거절하고 약 2년간 인도사무부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케인스는 나중에 마셜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1909년부터 경제학 강사 겸 특별연구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2년 뒤 그는 고작 28살의 나이에 영국 최대의 경제단체였던 왕립경제학회의 공식 기관지인 '이코노믹 저널'의 편집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영국 재무성의 요청을 받아 전시 재정과 관련된 업무를 맡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엔 영국 정부 대표로 발탁되어 베르사유 조약에도 개입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이 불러올 과도한 전쟁배상금과 불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는 훗날 실제로 전쟁배상금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전쟁의 씨앗이 되면서 케인스의 예언은 적중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부터는 화폐 개혁론과 확률론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립시켰습니다. 그 외에 케임브리지에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데려오려고 노력하거나 수학자 프랭크 램지의 지도교수로 일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케인스는 1936년 대공황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기에 자신의 대표 저서이자 훗날 세상을 바꾼 책인 '고용, 화폐, 이자에 관한 일반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고전학파의 이론을 부정하고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자유당 상원의원과 영국 중앙은행의 이사를 지냈으며, 전후 국제경제의 질서에 대한 연합국들의 논의가 있는 자리에 영국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특히 1944년에 '방코르'라고 불리는 세계 공통 통화를 만들어 세계중앙은행과 국제 청산동맹을 설립하자는 내용을 담은 '케인스 안'을 제안했지만 미국에서 제시한 '화이트 안'에 밀려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금본위제인 브레튼우즈 체제가 만들어지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 남작 작위를 받은 케인스는 1946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아내가 불임이라 자식이 없었기에 작위는 사라졌습니다.
2. 업적 및 평가
영국 경제학의 대표자이자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가 주장한 독창적인 케인스주의의 이론은 오늘날 거시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여전히 경제학계에서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 20세기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경제학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문제적인 경제 상황의 타개책이라는 믿음과 경기는 기다리다 보면 자연히 안정될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팽배한 기존의 자본주의 이론에 중요한 수정을 가한 경제학자로, 마르크스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많은 반발 속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 및 정책 활용이 불황을 해결하는데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따라서 현대 경제학은 케인스주의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그의 업적은 경제학의 역사에 큰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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